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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0.1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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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보다 장군이 더 적합한 이유
<특별기고> 민족의 영웅을 넘어 세계적인 영웅 만들기 위해
 
정광일
▲  안중근 장군동상과 유족대표의 만남  국내 유일한 안중근 장군 유족인 안기수  안기려씨가 지난 18일 국회내 헌정기념관 앞뜰에 전시되고 있는 큰 할아버지  안중근 장군 동상을 찾아 참배한 뒤 동상을 만져 보지고 있다.  ©단지12 닷컴
 ‘안중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중국 하얼빈 역에서 조선초대 통감을 지낸 조선침략의 원흉 이등박문을 권총으로 사살하고 사형 당한 독립운동가, 그리고 단지 손도장, 그 다음에는 무엇이 떠오를까?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맞아 각계에서 안중근 관련 행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연극, 뮤지컬, 영화, 드라마 제작에 손도장 찍기 이벤트 등이 연일 신문 방송에 보도되고 있고 여기에 안중근청년아카데미가 마련한 안중근 하얼빈 동상 국내반입, 안중근 웅변대회, 안중근 서예전, 안중근 평화마라톤, 국민화합대행진 걷기대회, 축구대회 등도 안중근 100년 기념행사다. 여기에 안중근 의사 호칭을 의사에서 장군으로 하자는 제안도 안중근 100주년기념 사업 중의 하나다.
 
서울 시장을 지낸 경제학자 조순 전 서울대 교수는 몇 해전 안중근 관련 학술대회에서 안중근의 호칭을 ‘안중근 선생’이라고 정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구한말 우리 민족이 암훌한 시대를 지나는 시기에 민족 운동가, 교육자, 종교인, 사상가, 항일독립운동가로 의병장이고  옥중에서의 당당함을 보여준 의사로 31살의 생을 마감했지만 딱히 그 호칭을 하나로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이 모든 것을 포괄해 ‘안중근 선생’으로 부르고자 한다고 조순 전 교수는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안중근 의사’라는 호칭을 써 왔다. ‘의사’는 직위나 계급을 뜻하는 일반 호칭이 아닌 ‘존칭’이다. 높힌 말이란 뜻이다. 우리 근대사에 안중근 의사 의외에 ‘의사’라는 존칭이 사용되는 애국선열이 몇 분 더 있다. 윤봉길 의사, 이봉창 의사, 백정기 의사가 그 분들에 속한다.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계기로 ‘의사 안중근’ 보다 ‘장군 안중근’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안중근청년아카데미는 4년 전부터 ‘안중근 장군’이라는 호칭을 자체적으로 사용해 오고 있다. 오는 10월 26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리는 안중근 100년 학술토론회에서 이 문제를 주요토론 의제로 설정해 놓고 안중근 장군 호칭 사용하기 국민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
 
‘장군’은 일반적인 호칭이지만 ‘의사’는 특별한 호칭이며 민족적인 우리끼리 존칭이다. 북한에서는 ‘안중근 렬사’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장군은 국제적인 용어이지만 의사는 민족적인 용어에 해당한다. ‘안중근 의사’라는 존칭은 국제적인 용어로 통용이 어렵지만 ‘안중근 장군’이라는 호칭은 국제적인 용어로 통용할 수 있다.
 
100년 전 안중근은 국제감각이 뛰어난 분이셨다. 안중근은 당시의 국제정세 분석에도 남달랐다. 일제가 대륙침략을 노골화 할 때도 이 문제를 국제적 시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고종이 헤이그에 밀사를 보내 일본의 조선침략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지만 실패한 이후 안중근은 러시아 고위층을 만나 만주침략을 노골화하기 위해 중국 하얼빈을 방문하는 이등박문을 노렸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거사를 치룬 후 일제가 주도하는 법정에서 일본의 조선침략과 동양평화 파괴를 전세계에 알리는 주도면밀한 법정투쟁 속에서도 안중근의 국제적 감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등박문을 죽인 이유 15개 조항 속에 일본의 대륙침략 의도를 세계에 폭로한 것이다. 안중근 법정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그 내용은 세계 언론을 통해 전달됐다. 헤이그 밀사 이상의 성과를 올린 것이다.
 
일제법정에서 상형을 선고받은 안중근은 후세에 자신의 뜻을 알리고자 하는 집필에 몰두했다. 저서로 자서전을 탈고하고 동양평화론을 쓰다가 끝을 못내고 순국했다. 100년전 31살의 사형수가 동양의 평화를 염려한 글을 썼다는 것은 안중근이 국제적 인물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안중근 거사 이후 중국인들이 안중근을 칭송했다. ‘조선의 안중근’이 아닌 ‘동양의 안중근’으로 자리잡는 근거다.
 
안중근 거사 100년을 계기로 한국 사회 각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안중근 재조명운동에서 조선의 독립만을 위한 ‘의사 안중근’이 아닌 동양의 평화를 갈구한 ‘장군 안중근’의 호칭이 필수적이다.

‘의롭게 산 사람’이라는 의사라는 호칭은 사실 단순한 존칭이다.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안중근을 의사라고 호칭해 왔다. 일부에서는 ‘의사’라는 호칭이 ‘장군’ 보다 훨씬 더 거룩한 극존칭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의병장 중에서 장군이라는 호칭을 부여받고 있는 항일독립운동가들이 많지만 이들의 장군 호칭보다 안중근 이름 뒤에 있는 ‘의사’라는 호칭이 더욱 값진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안중근과 다른 의병장(장군)들과 차별화해야 한다는 의미로 안중근을 의사라고 부르고 싶어한다. 의병장군 중에서도 안중근은 더 높은 의사 반열이라고 주장하고 싶어한다. 의사가 장군 보다 더 높은 존칭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그렇지 않다. 윤봉길, 이봉창 ,배정기 의사는 의병을 조직화해서 항일무력투쟁을 진두지휘한  무력투쟁의병장 출신이 아니다.
 
안중근 장군은 하얼빈 거사 이전부터 의병장으로 독립전쟁에 나섰다. 하얼빈에서 이등박문을 사살하는 작전을 수행하기 이전부터 연해주에서 군대(대한의군)를 조직해 3 차례나 국내진공작전을 진두지휘한바 있다.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을 사살한 것도 독자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준비과정부터 거사까지 여러 동지들과 의논했고 하얼빈에서도 여러 대원들이 참여한 일종의 특공작전이었다. 이등박문이 하얼빈 역에 도착하는 날 하얼빈 역 보다 한 구역 앞에 있는 채가구 역에 이등박문에 하차할 경우를 대비해 우덕순과 조도선을 배치하고 안중근은 혼자서 하얼빈 역을 담당했다. 빈틈없는 특수작전의 단면이다.
 
안중근은 특공작전을 마친 후 현장에서 러시아 헌병들에게 체포됐고 자신의 신분을 대한의군참모중장 특파독립대장이라고 밝혔다. 하얼빈 특공작전을 지휘한 총책임자라는 의미다.
그후 일본경찰에게 넘겨져 대련 여순감옥에 수감된 안중근은 조사 과정에서 일관되게 이등박문 사살은 독립군으로 적장을 사살한 것이라고 밝혔고, 법정 최후진술에서도 개인자격이 아닌 독립전쟁 중에 적장을 사살한 것이니 자신을 만국공법(국제법)에 의해 포로로 대접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제법정은 안중근을 ‘총 잘 쏘는 사냥꾼’이라 격하시키고 사형을 선고했다.
 
안중근은 사형선고를 받은 후 항소하지 않고 동양평화론을 집필하면서 여러 개의 유묵을 남겼다. 100여점이 전해지는 안중근의 유묵은 대부분 사형선고일(2월14일) 이후 쓴 것이다.
안중근의 붓글씨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살아남은 자들에게 남긴 유언과 유서에 해당하는 유묵이다.

안중근의 유묵 중 사형집행 직전에 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쓴 유묵이 ‘위국헌신 군인본분’(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이다. 사형 집행일을 앞두고 마지막에 쓴 글 속에 자신의 신분이 군인임을 후세에 남기고자 했다. 독립전쟁 중에 적장을 죽이고 체포되어 사형을 당하는 것이 조금도 억울하지 않다는 당당함이 담겨진 안중근의 마지막 유묵, ‘爲國獻身軍人本分’ 속에서 우리는 안중근의 호칭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안중근 장군론의 근거다.
100년 전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 분연히 일어나 의병을 조직하고 독립전쟁에 나서 적장을 죽이고 체포돼 사형을 당한 대한의군참모중장 안중근을 ‘의사’가 아닌 ‘장군’으로 호칭하자는 제안을 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다. 일본법정은 안중근의 주장을 거절했지만 이제 우리가 100년 전에 안중근이 그토록 인정받고 싶어했던 군인신분 주장을 수용해주자는 것이 안중근 장군론이다.
 
안중근 100년, 안중근 유해 찾기보다 안중근 정신 찾기가 더 시급하다. 100년 만에 안중근 장군으로 새롭게 만나 그의 평화사상 속에서 우리가 처한 사회적 국가적 민족적 과제를 풀어나가는 열쇠를 찾고 더 나아가 동양평화를 실현하자는 것이 안중근 운동이다. 안중근 운동은 동양평화를 간절하게 원했던 안중근 장군에서 시작될 수 있다.

<정광일 / 안중근청년아카데미 대표>
 

원본 기사 보기:안중근청년아카데미
기사입력: 2009/09/23 [11:26]  최종편집: ⓒ 마라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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